[김희경의 컬처insight] TV안에 들어온 15분 영상…유튜브 시대에 적응을 시작하다

입력 2020-01-17 14:22   수정 2020-01-17 14:47


TV에서 잘 보지 못했던 낯선 전개가 펼쳐진다. 떡국을 먹으며 레시피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과학 수업이 진행된다. 그리고는 유도 경기장을 비춘다. 이렇게 15분짜리 영상 6개가 연이어 나온다. 나영석 PD가 지난 10일부터 tvN에서 선보이고 있는 예능 ‘금요일 금요일 밤에’다. 각 영상 속 등장 인물도 모두 다르다. 6개 영상 사이에 특별한 연관 관계도 없다. 음식, 과학, 스포츠, 미술, 여행, 노동 등 주제가 제각각이다. 하지만 영상마다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유튜브 영상 하나 하나가 완성된 기획과 스토리텔링 구조로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유튜브의 시대, TV가 ‘적응’을 시작한걸까. 유튜브를 통해 짧은 영상이 주는 막강한 파급효과를 학습한 TV는 나름의 적응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15분 이하의 ‘숏폼(short-form)’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나 PD가 말한 제작 배경을 들어봐도 그 적응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이 방송을 10분 정도 시청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10분을 시청하는 패턴이라면 제작자가 거기에 맞춰야 하지 않겠나.그렇다고 ‘알아서 끊어보세요’라고 던지는 건 조금 무책임하다. 유튜브 클립은 하나를 보면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각자 한 코너를 보고 다른 코너로 넘어가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TV와 유튜브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다. 나 PD는 예능 ‘신서유기’의 시즌 7 방송을 앞두고 지난해 9~11월 5분짜리 영상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에 간 세끼’를 선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예능 ‘라면 끼리는 남자’에선 더욱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TV에 6분짜리 예고를 틀어주고 유튜브에서 본방송을 보여준다. 김태호 PD는 지난해 7월 ‘놀면 뭐하니?’로 복귀하기 전, 동명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릴레이 카메라’ 콘텐츠를 공개했다. 카메라가 자신에게 오면 자유롭게 찍고, 주고 싶은 사람에게 넘겨 다시 찍게 하는 방식이었다. TV 방송도 똑같은 포맷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 미공개 영상 등을 올리며 TV와의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일부 스타 PD들의 선구적인 시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송사들도 자체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CJ ENM은 지난해 기존의 디지털 스튜디오들을 합쳐 ‘tvN D’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예능, K컬처, 뷰티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아 숏폼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MBC는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 채널 ‘M드로메다’를 신설하고 지난 12일 첫 콘텐츠로 ‘돈플릭스’를 공개했다.
이같은 변화는 나 PD의 이야기처럼 시청 패턴의 변화로 인한 것이다. 기존엔 무작정 TV 앞에 1시간 이상 머물며 긴 호흡의 프로그램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방송을 끈질기게 보고 있는 건 쉽지 않았다. 잠깐 보다가도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면 중간에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보완해 준 것이 유튜브였다. 어디에 있든 무얼 하고 있었든 휴대폰을 통해 짧은 영상을 보며 잠깐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로 시작된 급변한 시청 패턴의 변화 앞에서 TV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돈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적응’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숏폼 제작은 TV가 일방적인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의 일상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유튜브에선 익숙한 숏폼이 TV안으로 들어오자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시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적응하다’는 뜻을 담은 책 <어댑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변이와 선택을 반복하는 ‘시행착오’가 있어야만 진화가 이뤄진다.” TV는 또 한번의 진화를 위해 그 시행착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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